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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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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문학뉴스】강형기 기자




수필 <골목> - 강형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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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 >

 

골목이 단어에 나는 첫 번째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바로 나의 어릴적 잊지 못할 그 골목길의 시절들. 지금은 대전에서 거주하지만 나는 31살까지 서울에서 태어나 거주하였고 초등학교 들어가기전 5살까지 정도의 시절에는 서울의 낙산이라는곳에 살았었다. 지금의 서울 낙산은 공원화되어 가족들과 연인들의 유명한 데이트코스가 되었지만 내가 어릴적 그 시대에 낙산은 성곽아래 달동네에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있는 풍경이였다. 좁게 굽이치는 골목길들 사이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낡은 주택들이 서로 몸을 비비며 하루하루 사람들의 살아가는 신음소리로 가득했던 곳이였다.

 

나의 고향은 낙산이다. 그곳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어린시절의 추억을 만들었다. 거미줄처럼 만들어진 좁고 수 많은 골목길들은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산을 깍아 만든 낙산의 성곽 아래의 달동네 경사진 골목길은 그 당시 유행하던 세발자전거를 타고 미끄럼타듯 바람을 맞으며 달려 내려오는 놀이가 너무 재밌었다. 낮 시간 아이들이 세발자전거타고 소리치며 노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일주일에 한번씩 지나가는 소독차를 쫓는 아이들의 모습들과 항상 골목길 초입에서 호떡을 팔던 아주머니. 목줄이 풀려 돌아다니던 동네 강아지들도 흔했던 그 추억들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낙산 아래 어릴적 달동네를 떠올리면 아직도 생생한 수 많은 추억이 있다지만 그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건 내가 살던 집 위로 더욱 올라가야했던곳에 살았던 동네 형이다. 이름도 얼굴도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형과의 추억과 항상 들고다니던 바이올린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내가 5살 즈음이였고 그 형은 초등학교 고학년 전 정도로 기억에 남는다. 늘 같은 시간에 바이올린 하나 들고 동네를 벗어났다가 저녁이 되기 전 돌아오던 형은 수 많은 아이들중에서 오직 나에게만 인사를 해주었다. 나도 형이란 개념은 있었지만 같이 손을 흔들며 응 안녕이라며 인사를 주고 받았었다. 하지만 그 형과는 인사 외에 단 한마디도 대화를 나누어 본 기억은 없다. 나는 지금 그 형을 바이올린형으로 가슴 깊게 기억하고 있다.

 

하루는 아이들과 놀고 있다가 나와 다른 아이와 싸움이 붙었다. 그 아이는 나보다 한두살 많았고 그래서 덩치도 컸었다. 싸움의 시작은 세발자전거에서 시작되었다. 나의 세발자전거를 그 친구가 반강제로 뺏어 타고는 돌려주지 않았던게 싸움의 발단이였다. 그렇게 싸움이 시작되었고 나는 머리채를 잡힌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있을때 나를 움켜지고 있던 아이가 으악소리를 내며 나뒹굴었다. 그리고 내가 본 광경은 바이올린형이 매우 화난상태로 나를 때리던 아이를 엄청나게 혼내주고 있는것이였다. 그렇게 나를 때리던 아이는 울면서 집으로 도망을 갔고, 바이올린형이 내 세발자전거를 되찾아주고 집 까지 데려다 주었다. 나 또한 겁을 먹은 상태로 아무 말 못하고 바이올린형을 따라 집까지 왔었다. 그 후로 바이올린형은 날 볼때마다 오늘은 누가 괴롭히지 않았냐며 항상 집까지 데려다 준 기억이 있다. 어린아이시절 나는 천군만마를 얻은듯했고 동네 아이들은 그날 이후로 날 함부로 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르기 전 나는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사 후에도 유치원을 다닌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6살 정도였던거 같다. 이사에 대한 개념조차 분명하지 못했을 그때의 나는 이제 이곳을 떠나 다른곳에서 산다는 말을 듣고 바이올린형을 이젠 못보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바이올린형과 떨어지는게 싫어서 이사가기 싫다고 떼를 쓰다 혼났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사날이 임박했을때 나는 바이올린형을 찾아 나섰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40대 중반이 된 지금에도 그 때 당시의 감정이 너무나 생생하다. 나는 울고 있었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바이올린형을 만나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사 전날 저녁 그 날 만큼은 늘 같은 시간에 모습을 보였던 바이올린형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이름도 집도 알지 못했던 나는 그 나이에 처음으로 이별에 대한 슬픔을 느껴본거 같다.

 

내가 지금 40대 중반이니 바이올린형은 아마도 50대 초반정도일 것이다. 지금도 같은 하늘 아래 어딘가에서 잘 살아가고 있을 나의 보디가드 바이올린형 또한 어린시절 나와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까. 가능만 하다면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 그 시절 나도 좀 무서웠던지라 말 한번 제대로 못해본게 너무나 아쉽다.

 

골목이란 곳은 항상 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담아낸다. 이른 아침 출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 길고양이들의 열심히 생존해가는 투쟁의 이야기들. 골목길 귀퉁에서 피어난 이름모를 들꽃의 이야기까지. 그리고 나의 골목에 서려있는 추억의 이야기는 어린시절 고향의 80년대 감성적 이야기들과 바이올린형과 나의 이야기들이 진하게 젖어있다. 모든 시간과 이야기들과 장소 그리고 사람들을 이어주는 골목은 무심코 지나치는 골목길이지만 골목이란 이름이 가지고 있는 공간은 우리들의 삶 우리들의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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