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달의 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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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달의 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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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문학뉴스】강형기 기자




 달의 노래  - 강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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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물속처럼 고요하다. 저녁시간은 사람 사는 소리가 들려도 자정을 넘어가는 시간이면 대도심에서도 살짝 외진 곳에 있는 우리 동네는 창문을 다 열고자도 우주 속에 혼자 있는 듯 고요하다. 어느 늦겨울 춘설로 덮인 새벽녘의 밤 하늘의 달은 유난히 밝았다. 잠자리에 들려다 창밖 세상의 모습에 나는 잠드는 걸 잊었다. 봄이 오기 전 마지막 겨울을 마주하는 것도 좋겠지. 나는 잠시 집 앞 골목으로 나섰다. 달빛 아래 외롭게 서있는 가로등 아래로 작은 골목길은 어느새 사람이 다닐 수 있게 눈이 양옆으로 치워져있다. 얼굴은 모르고 살아도 마음은 이웃에게 갈 수 있는 길은 여전히 내는구나 싶었다. 마지막 눈길을 걸어보고 싶어 떠나가는 겨울의 마지막 품 안으로 발을 내딛는다.

 

몇 년 전 같은 시기의 봄이 오기 직전 마지막 눈길에서 만났던 한 꼬마 여자아이가 생각났다.

그날도 오늘과 같았던 둥근달이 뜬 저녁시간이었다. 야근 후 조금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오며 항상 걷던 작은 골목길에 쌓인 눈을 뽀드득 소리가 나게 밟으며 귀가하던 그곳에 기껏 5~6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꼬마 여자아이 하나가 혼자서 눈을 굴리며 놀고 있었다. 아이 위로 달이 떠있고 아이는 달처럼 둥근 눈을 굴리고 있다.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의식한 아이가 하던 놀이를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아이가 겁을 낼까 봐 바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아이는 나를 보고 활짝 웃으며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넸다. 뜻밖의 반응에 나도 활짝 웃으며 눈사람을 만드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달님을 만든다고 대답했다. 동시를 쓰는 나이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의 동심은 온전히 따라갈 순 없는가 보다. 의외의 대답에 마음 한편에 늦겨울의 추위를 다 녹여버릴 따뜻한 춘꽃 한 송이가 피어나는 듯했다. 밤 하늘의 달님도 자기를 만드는 아이가 참 예쁘고 사랑스러웠던지 어두운 골목길을 아이 위에서 온 힘으로 밝혀주는 그날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잠시 동안 아이와 같이 놀아주었고 아이는 새 친구가 생긴 거처럼 즐거워하던 그 얼굴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아저씨 달님은 계속 저를 따라다니나 봐요. 눈을 굴리며 여기까지 왔는데도 제 머리 위에 있어요.”


별이 안 보일 때는 달님도 심심할 테지, 오늘은 꼬마 공주님이 눈으로 달님을 만들어주니 달님도 신나서 따라오는 걸 거예요."

 

아이의 눈이 둥그레지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정말? 달님이 신났어요? 그래서 나한테 노래를 불러주고 있나 봐요.”

 

가만히 들어보니, 이른 춘풍의 소리. 바람에 나뭇결마다 흔들리는 소리. 산을 껴안은 마을의 밤새가 우는소리. 고용한 골목길에서 아이가 눈을 굴리는 모든 소리가 하나씩 들리기 시작했다. 참 많이 잊고 살았더라. 자연이 주는 하나하나의 노래들을. 아이는 이것들을 보고 달의 노래라고 했던 것일까. 한참을 눈을 굴리던 아이는 마치 밤의 요정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아이만 한 눈덩이는 달을 꼭 닮아있었다그 뒤로 나는 밤 하늘의 구름이 별들을 숨겨놓아도 달빛만큼은 세상을 은은하게 비추어내는 달이 참 좋아졌다. 

 

서울을 떠나 대전으로 내려온 지 여러 해가 지났을 정도로 나이를 먹어가고 어른이 된 나이지만 부모님 눈에는 아직 결혼 못 한 아들이 눈을 굴리던 어린아이 같은가 보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먼저 전화가 오고, 아들이 밥도 제대로 못 차려 먹을까 봐 계속 밑반찬을 해주시려는 부모님 마음은 내가 부모가 되어봐야 겨우 알 수 있을 거 같다. 나는 그동안 부모님을 세상을 비추는 태양과 같다고 생각했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밤 하늘을 비추는 달과 같지 않을까. 앞이 훤히 보이는 대낮에 사람이 나아가는데 전혀 지장은 없지만 빛조차 없는 어둠 속에서는 한 발을 내딛기도 어렵다. 하지만 우리가 대도심의 야경 속을 벗어나서도 안전하게 집으로 찾아올 수 있음은 여전히 밤 하늘 위에 떠 있는 저 달이 우리 위에서 빛을 내어주기 때문일 것이니, 자신은 별들과 떨어져 외로울지라도 자식을 위해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도록 달처럼 지켜주는 부모의 삶. 우리는 태양을 보며 살았지만 부모는 밤잠 설치며 달을 보며 살아야 했던 매일 밤 목메던 그 삶이 내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부모님은 여전히 같은 삶을 살고 계시는 걸 느끼니 이제야 늦은 철이 드나 보다.

 

춘풍이 아직은 차가운 3월의 오늘. 대지에 내리앉아 한껏 쌓여진 달빛에 발이 빠지도록 밟아본다. 늘 보던 작은 동네 골목길도 달빛에 젖어들면 그리움으로 쌓이는 밤 풍경이 참 좋다. 봄이 오고 있음을 느낀다. 이 겨울이 지나가니 또 다시 눈을 밟았던 추억 하나 쌓이겠지. 가로등이 별로 없어 어둡고 좁은 동네의 작은 골목길은 항상 나를 따라다니는 달빛덕분에 여전히 발을 내딛을 수 있다. 그 겨울 후로는 눈을 굴리던 여자아이를 볼 순 없었지만 아이가 말하던 달의노래를 나는 매일 밤 듣고 있다. 그리고 어디에 있든 우리를 보듬어주시는 부모님처럼 오늘 밤도 달은 뜬다.

 




1 Comments
선진문화뉴스 04.04 11:29  
영혼이 맑아지는 글인듯 합니다
달빛이 상징하는 포근한 스토리 구성들이 정겹고 따듯합니다
시대에 따라 결여 되어가는 것들이 안타까운 현실에서
동화 속 같은 이러한 순수를 담은 글들이 점차로 그리워 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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